대안, 독립영화의 중심 영화제
관객과 함께 성장하는 전주국제영화제
2000년,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로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의 지형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 왔다.
전주의 모토는 동시대 영화 예술의 대안적 흐름과 독립 실험영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래 영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재능의 발굴, 창의적인 실험과 독립정신을 지지하며,
전 세계 영화작가들이 만나고 연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2016년 1월 1일,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고성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다. 경남 고성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며, 시나리오에 반영된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소다. 고향에서의 촬영은 따뜻하고 흥겨운 분위기로 시작됐지만 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감춰 둔 기억이 튀어나왔다. 마치 평생 숨기려던 과거가 생경하게 되살아난 느낌이었는데,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재현될 때 그 기억은 더욱 강렬하게 소환됐다.
계속된 감정의 소용돌이에 혼란스러웠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단지 그 날것의 감정을 배우들에게 전달하겠단 목적에만 매달린 것 같다. 하지만 고성 곳곳에서 배회하던 기억의 망령들이 자꾸 말을 걸어왔는데 그들은 죄책감, 자괴감 등의 옷을 입고 여전히 그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카메라가 로케이션을 비추고 인물이 화면을 채우자 망령들은 기다렸다는 듯 되살아나 움직였다. 이 감정을 프레임에 어떻게 담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애써 연출에 욕심을 낼수록 더 큰 장애물에 부딪혔다. 그런 욕망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과거를 대면하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 ‘진짜’에 근접해진 공기가 어느덧 화면에 스며들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는 유일한 장면, 즉 엔딩 신을 남겨두고 로케이션을 이동하는 중이었다. 촬영 기간 내내 맑았던 하늘에서 엄청난 눈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쉬이 멈출 기미도 없이 오후 내내 내리던 눈이 멈추어 주기만을 기도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을 촬영한 소스에 눈발 소품과 CG를 섞으려 했기 때문이다. 결국 엔딩 신 촬영을 포기하려던 순간 갑자기 눈이 멈췄고, 특수효과팀이 대형 기기를 동원해 스티로폼 파편으로 만든 눈을 공중에 쏘아 올렸다. <눈발> 촬영 중, 유일하게 인위적인 것을 화면에 등장시키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미 어둑해진 하늘을 새하얀 가짜 눈이 에워싼 풍경은 너무 이질적이면서도 헷갈렸다. 진실과 거짓의 불분명함을 상기하다가 불현듯, 오랜 세월 나 스스로를 기만해 왔던 허영과 모순이 마치 이 눈발 소품처럼 느껴진 것이다.
엔딩 신 촬영을 마치고 나니 지금껏 나를 따라다닌 기억의 망령을 털어 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눈발> 제작 과정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용기 내어 고백한 진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조재민 CHO Jaemin
<징후>(2012), <버블아트>(2013)
감정의 발자국을 따라
차갑게 흩어져 버린 슬픔에 대한 은유로 본다면 <눈발>은 온기로도 녹지 않을 겨울의 영화다.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남쪽 지방으로 전학 온 고등학생 민식(진영)은 새 학교에서 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 거친 남학생들의 문화에 섞여 들려 노력한다. 영화는 명백한 가해와 피해의 선을 긋지 않은 채 경계에서 방관하고 주저하며 연민하는 감정을 따라간다.
민식이 과거 학교에서 가해자였는지 피해자였는지에 대한 사연과 노골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하는 소녀 예주(지우)의 아버지가 지방에서 일어난 미성년자 살인사건의 진범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영화 끝까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실체적, 심리적 모호함 속에 방치된 어린 학생들이 연루된 일상적 폭력의 세부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비겁하기 때문에 폭력적이 되기도 하지만 나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연히 민식은 길 잃은 작은 검은 염소를 돌보게 되고 묵묵한 예주에 대해서도 점차 마음을 연다.
‘단단한 성’이라는 이름의 고성(固城)에는 오래된 굳건한 성벽이 있어, 드넓은 바다로 전망이 트인 성채는 종종 민식과 예주, 그리고 검은 염소의 도피처가 된다. 하지만 곳곳이 허물어진 성벽처럼 이들의 관계도 굳건하지만은 않다. 지방 소도시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사연에 냉담하고, 작은 염소를 지키고픈 애달픈 마음은 무참히도 짓밟히게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이 온통 재투성이가 된 채 예주는 기어이 차가운 물웅덩이에 발을 빠뜨린다. 그녀가 남긴 검은 발자국은 모든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각인을 쿵쿵 내리꽂는다.
학교폭력 영화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눈발>은 현실에 대한 영화이기 이전에 깊은 감정의 전이에 대한 영화다. 조재민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이창동 감독 지도로 시나리오를 썼고 명필름 영화학교 1기로 입학해 영화를 완성했다. 검은 웅덩이, 흩날리는 눈발, 그리고 흰 날개옷의 검은 염소 등, 영화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치한 상징들은 기상의 변화와 공명하며 감정의 진폭을 확장시킨다. 저 밑, 검은 땅 밑에서 만난 운명은 결국 우리의 마음을 눈처럼 하얗게 흩어지는 비탄 속에 차갑게 남겨 둔다. 송효정 SONG Hyo Joung
제작 명필름랩(mfl@myungfilm.org)
배급 리틀빅픽쳐스(sales@little-big.co.kr)
해외세일즈 화인컷(cineinfo@finecut.co.kr)
대안, 독립영화의 중심 영화제
관객과 함께 성장하는 전주국제영화제
2000년,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로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의 지형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 왔다.
전주의 모토는 동시대 영화 예술의 대안적 흐름과 독립 실험영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래 영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재능의 발굴, 창의적인 실험과 독립정신을 지지하며,
전 세계 영화작가들이 만나고 연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