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에>를 제작하면서 찾아온 몇 가지 우연들

1. 2017년, 전작인 <춘천, 춘천>으로 무주산골영화제에 초청된 첫날 관객과의 대화를 기다리며 양흥주 배우님과 운동장 등나무 아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다음 영화는 청평사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구체적인 스토리가 없던 당시 딱히 할 말이 없어 자연스레 서로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형수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뭐… 똑같지. 방과 후 시간 강사로 연극 수업하고… 연극 준비하고.”

그 순간, 단상이 떠올랐다. <춘천, 춘천>에선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청평사를 찾았던 ‘양흥주’가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아내와 다시 그곳에 간다면 어떨까? 그렇게 <겨울밤에>가 시작되었다.

2. 휴대폰을 잃어버린 은주를 따라 청평사 입구까지 갔다가 말다툼을 하고 사라진 은주를 찾는 흥주의 장면을 촬영할 때였다. 밤늦은 시간이라 문을 닫은 상점들이 늘어선 세 갈래 갈림길에서 은주를 찾아 헤매던 흥주는, 그녀가 도통 모습을 보이질 않자 분하고 지친 마음에 급기야 바닥에 드러눕는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위로 난 길로 향하는데… 그때 양흥주 배우는 순간 자신이 장갑을 벗어 놓았다는 사실을 잊은 채 위로 난 길을 뛰어올랐다. 빈 화면엔 덩그러니 놓인 장갑만 보였다. 컷을 외치는 순간 뛰어와 다시 장갑을 주워 든 양흥주 배우. 우연히 만들어진 장면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났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은주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린지 모르고 헤매는 흥주. 
두 사람의 겨울밤.’

3. 고요한 눈길을 걸어 산속으로 향하는 은주의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 서영화 배우님께 화면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걷기를 주문했고, 은주는 산속으로 사라졌다. 컷을 외치고 얼마 후 서영화 배우는 그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잠시, 자신만의 휴식을 즐기는 듯한 일종의 자유로움이 시종일관 경직되었던 은주에게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촬영감독과 나는 녹화를 멈추지 않고 그 모습을 담았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이 만들어졌다. 장우진 JANG Woojin

<새출발>(2014), <춘천, 춘천>(2016), <초행>(2017, 프로듀서)

한겨울 밤의 꿈
장우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겨울밤에>는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밤과 딴 세상처럼 얼어붙은 고요한 겨울밤을 배경으로, 공간과 시간에 갇힌 한 중년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태도’에 관한 유쾌한 코미디로 시작되는 영화는 실존적 구조를 단계적으로 드러내는 구성을 취한다. 중년 부부 은주와 흥주는 춘천의 한 섬에 있는 절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길에 은주의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을 알아차린다. 은주는 시간이 얼마나 늦었든 배를 타는 힘든 여정이든 뭐든 간에 돌아가야 한다고 우기고, 흥주는 은주의 말을 따르면서도 짜증을 감추지 못한다. 험하고 황량한 눈길을 되돌아가면서 속으로 서로에 대한 불만을 감추고 있는 이 중년 부부는 젊은 연인과 마주친다. 군인과 시인인 이들은 연애 초기의 연인들이 그렇듯 수줍음이 가득하다.

<겨울밤에>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교묘한 편집을 통해 이들 두 커플의 만남을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미스터리로 바꿔 놓는다. 우연하게도 숙명적으로 닮은 두 삶이 교차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 루프일까? 홍상수의 수다스럽고 반복적인 드라마 스타일을 계승한 듯 보이는 <겨울밤에>는 ‘홍상수 스타일’이라는 낡은 틀에 신선하고 시적인 생동감이 주입된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그 자체로 기시감을 느끼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포장마차에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얼어붙은 호숫가를 걷고 컵라면과 소주를 함께 마신다. 영화 형식에 담긴 수수께끼는 더 깊고 더 보편적인 질문으로 치환된다. 두 사람은 서로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데비카 기리시 Devika GIRISH

제작 봄내필름(bomnae.films@gmail.com)
배급 인디스토리(indiestory@indiestory.com)
해외세일즈 엠라인디스트리뷰션(sales@mline-distribution.com)

2018 낭뜨3대륙영화제 청소년심사위원상 수상

2018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 후보

2018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 감독상·여우주연상 수상

2021 들꽃영화상 극영화 감독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