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네마프로젝트

“프로듀서로서의 영화제”를 꿈꾼

10년
이전 이후

파도치는 땅

The Land on the Waves
임태규 LIM Taegue
Korea 2018 83min DCP Color Fiction
Director’s Note

<파도치는 땅>이 까마득히 먼 어딘가에서 이름 없는 관념의 형태로 방랑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의 무죄 판결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나의 시선은 그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고 끝내 핏줄의 인연을 끊어야 했던 사람들의 세월에 닿았다.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 가족의 관계와 처참히 짓밟혔을 일상이 안타까웠다. 동시에 수억 광년쯤은 차이를 두고 산재해 있었을 영화의 재료들이 하나의 세계로 모여드는 기묘한 기운을 받았다. 시나리오로 준비해 오던 ‘가까워질 수 없는 부자 관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파란만장했을 피해자와 피해자 자식들의 삶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나는 2014년 4월, 바다에서 일어난 또 다른 국가폭력의 비극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카오스적 문제 안에서 자명하게 드러나는 하나의 질서는 두 사건이 파괴한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작별이었으며, 다시는 복구하지 못할 삶의 훼손이었다. 두 사건이 가진 수십 년의 시간 차, 바다라는 공간, 그 사이에 청산되지 못하고 유랑하는 황폐화된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비극의 사건들이 점차 가속도를 내며 가까워졌고, 주인공 캐릭터와 만났다.

 

시작이 그러했기 때문인지 픽션과 팩트, 두 조각으로 나누어진 생각 회로는 시나리오를 발전시켜 나가고 영화화하는 데 순조롭게 작동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이미지를 제시할 것인가, 간접적으로 암시만 할 것인가, 메타포를 이용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다른 영화에 접근할 때보다 예민해야만 했다. 허구와 사실, 창작욕과 자기 검열의 대결이 내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그렇게 시공간을 넘어 친밀해졌던 요소들이 각자의 세계로 분열하기 시작했다. 그때,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믿음은 주춤했던 이야기가 영화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만들어 주었다. 그 문을 통해 사산분리되었던 <파도치는 땅>이 초현실적 속도로 영화의 세계에 수렴하는 것을 느꼈으며, 짜릿했다.

 

당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신 이충직 전 집행위원장님, 김영진, 이상용, 장병원 전 프로그래머님, 송현영 전 총괄 프로듀서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우주에 외로이 흩어진 시간들이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음속의 속도로 수렴하여 영화적 순간으로 빛나길 바란다. 임태규 LIM Taegue

Filmography

<폭력의 씨앗>(2017), <파도치는 땅>(2018)

Critic’s Note

파도의 너울 앞에서 
납북어부, 간첩조작, 세월호, 국가폭력. <파도치는 땅>의 표면에 일렁이는 단어들은 크고 무겁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영화에 정념이 흘러넘치는 순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선 절규나 오열도, 깊은 슬픔이나 좌절도 좀처럼 알아챌 수 없다. 주인공 문성(박정학)은 여러모로 골치 아픈 삶의 시기를 보내는 중인데도 이따금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처럼 군다. 이 사람은 지금 화를 내고 있나? 슬퍼하고 있나? 울고 싶은 건가? 웃고 싶은 건가? 감정처럼 의중도 그리 명확하지 않다. 아버지와 골이 깊은 듯하나 그는 진심으로 아버지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버지 앞으로 남겨질 보상금, 자식에 대한 걱정, 곧 사라져 갈 동네의 풍경 등 그의 관심은 이곳저곳을 맴돈다. 문성은 뚜렷한 동기와 정서를 지녔다기보다 그 자신도 영문을 모른 채 역사의 상흔들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중인 것처럼 보인다. 

 

독특하다면 독특한 그의 행보는 하나로 엮어 내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을 느슨하게 연결한다. 평범한 어부였던 아버지는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세대 간의 대화는 좀처럼 어렵고, 그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세월호의 아픔을 바라본다. 문성 말마따나 “참 이해가 안 되”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그는 서 있다. 대체로 미동 없는 카메라가 자기 앞의 인물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거리감들이 영화의 행간 사이로 돌출되는 걸 보게 된다. 개인과 개인의 거리는 개인과 역사의 거리를 떠올리게 하고,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는 영화와 현실의 거리를 고민케 한다. <파도치는 땅>은 그러한 거리들 속에서 때로 머뭇거리지만 끝내 결단을 내리기 위해 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손시내 SON Sinae

 

배급 아이 엠(eyem_20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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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독립영화의 중심 영화제

관객과 함께 성장하는 전주국제영화제

JEONJU intl. film festival

2000년,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로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의 지형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 왔다.

전주의 모토는 동시대 영화 예술의 대안적 흐름과 독립 실험영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래 영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재능의 발굴, 창의적인 실험과 독립정신을 지지하며,

전 세계 영화작가들이 만나고 연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