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독립영화의 중심 영화제
관객과 함께 성장하는 전주국제영화제
2000년,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로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의 지형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 왔다.
전주의 모토는 동시대 영화 예술의 대안적 흐름과 독립 실험영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래 영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재능의 발굴, 창의적인 실험과 독립정신을 지지하며,
전 세계 영화작가들이 만나고 연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불숨>은 조선의 도공이 만들었으나 일본의 국보가 된 조선 찻사발(일본명 기자에몬)을 재현하기 위해 한평생 불(火)과 싸워 온 조선의 마지막 사기장 천한봉과, 그의 딸이자 제자인 천경희의 이야기를 6년 동안 기록한 영화다. 열네 살에 시작해 70년이 넘게 도자기를 구워 오면서 거의 매일 700여 개의 그릇을 만들었지만, 가차없이 깨부수고 돌아오면서 그는 “아직도 멀었다”고 고개를 떨군다. 최고의 명장이 한평생 매달리고도 끝내 도달하지 못함은 도자기가 불의 조화(造化)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고 유약을 발라 가마 안에 넣은 뒤, 정성껏 불을 때는 일까지로 제한된다. 서민의 막사발이라는 이유로 그 어떤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그는 목측(目測)으로 불의 조화를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가마 불 앞에서 천한봉 장인은 날마다 사투를 벌인다. 그의 뒤에는 딸이자 제자로 그림자처럼 살아온 천경희 씨가 있다. 좀처럼 불 앞을 내어 주지 않는 아버지 옆에서 묵묵히 버티고, 때로는 노파심을 거두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물러서지 않으며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딸. 촬영을 한 지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물레를 돌리던 딸이 고백해 왔다. 가업을 물려받기로 돼 있던 남동생이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그 빈자리를 대신해 아버지의 소명을 잇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천경희 작가의 홀로서기 과정은 깊은 가마 속에서 뜨거운 불길을 감내하고, 몇 번의 재벌구이를 견뎌 내며 완성되는 한 점 그릇과 오버랩되었다. 그 오랜 기다림의 끝에 딸은 아버지로부터 불을 물려받게 된다. 25년 만의 일이었다.
재작년 시월 마지막 날, 천한봉 장인은 불숨을 놓으셨다. 평생 소원이었던 일본 교토의 절에 보관된 조선 찻사발을 함께 보러 갔을 때의 긴장과 환희, 2019년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선정돼 전주에서 영화를 처음 상영하던 날 영화의거리에 펄럭이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감회에 젖던 천한봉 장인의 모습이 쩌렁한 목청과 함께 들려온다.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좋은 그릇을 만들 수 없어. 사람이 곧 그릇이지. 좋은 그릇이 되려면 무엇보다 견뎌 내는 힘이 있어야 돼.”
천한봉 장인은 떠나고, 딸 천경희 작가는 아버지가 떠난 가마를 2년째 지키고 있다. 고희영 KO Heeyoung
<물숨>(2016), <시소>(2016), <물꽃의 전설>(2022)
미완의 꿈을 꾸다
<불숨>의 초반부를 장악하는 인상은 확신에 찬 장인과 그 탓에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전수자의 갈등이다. 게다가 둘은 부녀지간이다. 딸 경희 씨는 아버지가 안 계신 틈을 타 장작을 넣길 연습하던 게 27년이 훌쩍 흘렀다. 천한봉 선생은 불에 관해서만큼은 딸을 간섭하고 의심하는 아버지로, 도입부에서 불 보기를 봐주는 딸에게 좀 큰소리로 말하라며 다그치는가 하면, 봉통*만이라도 때겠다는 딸에게 “네가 차래**가 약해. 차래를 잘 던져야 하는데…”라며 훈수를 둔다. <불숨>은 서로를 향한 미더움과 서운함으로 불 앞에 선 두 도공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순간은 견고한 소신으로 외길을 걸어온 천한봉 선생이 자신의 불능을 털어놓을 때다. 그는 똑같은 흙, 똑같은 유약, 똑같은 손에서 나온 도자기가 천차만별의 모습을 띠는 걸 보며 이 ‘불의 예술’은 평생을 해도 모르겠다 말한다. 온 시간을 바쳤지만 도무지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무려 국보로 지정된 조선의 막사발을 마음에 품으며 그 같은 그릇을 만들길 꿈꿔 온 그는 소망을 성사해 내지 못한 채 매일같이 쌓인 사기들을 깨뜨린다. 그러니 이 미지의 세계에서 그는 어쩌면 불만족에 익숙해지는 법을 딸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말미에 직접 불을 때는 경희 씨의 작업 도중 아버지는 수시로 끼어들며 한마디씩 얹는다. 자리를 비켜 달라고 성내는 딸의 모습은 초반부의 장면과 희한한 대구를 이루며 공명한다. 이 긴 대립은 불을 바라보고 신경 쓰며 집중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여 온 인간의 역사를 어렴풋이 상기시킨다. 아직 깨질 그릇이 많이 남았고, 경희 씨는 그 대를 잇고 있다. 이보라 LEE Bora
*봉통: ‘예열 칸’으로 불리는 가마의 입구 부분. 전통 가마는 대체로 다섯 개의 칸으로 연결돼 있으며, 가마 전체를 예열하기 위해 장작을 넣어 불을 때는 곳을 뜻한다.
**차래: 장작을 가마 안쪽 깊이 집어 넣는 것을 의미한다.
제작 영화사 숨비(ciberia@naver.com)
해외세일즈 고민정(minwaits@gmail.com)
대안, 독립영화의 중심 영화제
관객과 함께 성장하는 전주국제영화제
2000년,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로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의 지형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 왔다.
전주의 모토는 동시대 영화 예술의 대안적 흐름과 독립 실험영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래 영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재능의 발굴, 창의적인 실험과 독립정신을 지지하며,
전 세계 영화작가들이 만나고 연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