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네마프로젝트

“프로듀서로서의 영화제”를 꿈꾼

10년
이전 이후

설행_눈길을 걷다

Snow Paths
김희정 KIM Hee-jung
Korea 2015 98min DCP Color Fiction
Director’s Note

추운 겨울, 한 남자가 눈이 쏟아지는 눈길을 눈물을 흘리며 걸어간다. 

 

<설행_눈길을 걷다>는 이런 지배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가 완성되고 중국 푸저우에 있는 영화제에 초청돼 갔을 때 만났던 한 중년 관객이 내내 기억에 남는데, 그는 홍콩 비즈니스맨으로 출장차 들른 도시에서 우연히 극장에 방문했다 영화를 봤다고 했다. 상영이 끝난 후, 울어서 충혈된 눈으로 말을 걸어온 그는 자신은 오랜 기간 알콜 중독자로 살아오다 지금은 ‘클린’ 상태라며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의 경험이 떠올라 힘들었지만 위로가 되었다고, 영화를 만들어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 관객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온 의미가 있으리라. 

 

나에게 영화는 이런 것이다. 메아리처럼 멀리 돌아 누군가에게 가닿아 흔적을 남기는 것. 오래 걸리고 느리지만 누군가에게 닿아 나무의 등걸처럼 흔적을 남겨 주면 좋겠다. 그래서 같이 궁금해 해주면 좋겠다. 추운 겨울, 눈이 쏟아지는 눈길을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나의 주인공에 대해, 그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말이다. 

 

<설행_눈길을 걷다>가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10주년을 기념해 상영되어 무척 기쁘고 영광스럽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기 어려운 소재와 주제의 영화였다. 앞으로도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되고 세상에 나와 더 많은 관객에게 흔적을 남길 수 있길 기원한다. 김희정 KIM Hee-Jung

Filmography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2012), <프랑스여자>(2019),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2023)

Critic’s Note

기도의 손길
누군가 매일 당신의 영혼을 위해 가장 단순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가장 순전해지는 기도를 한다면, 그것을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적어도 <설행_눈길을 걷다>에서만큼은 기도와 사랑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다. 생의 아름다움과 기적과도 같은 구원은 이 이어짐 속에 깃든 게 아니겠느냐는 듯이. 김희정 감독의 영화 세계에 어른대던 부재의 감각, 특히 부모나 친구처럼 아끼는 이들의 죽음은 이번에도 계속된다. 남아 있는 이들이 대면하는 죄의식, 두려움, 회한과 같은 감정의 밀도 또한 짙다. 하지만 끝내 비극으로 침전하거나 매몰되지 않는 데는 이 이어짐을 향한 두터운 시선이 있기 때문이리라.

 

알코올에 중독돼 환시에 시달리는 정우(김태훈). 그를 마지막까지 외면하지 않고 감싸 안는 어머니와 마리아(박소담), 원장 수녀와 어쩌면 정우가 ‘테레사의 집’에서 자기와의 싸움을 벌이던 방에 있던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까지. 이 여성들은 포기를 모른 채 섬처럼 혼자 남은 정우를 세상으로 끌어당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메마른 정우는 문자 그대로 그녀들의 손길을 거쳐 살아나고 또 살아난다. 어린 시절 눈길의 추위조차 잊게 한 어머니의 손, 성냥과 호빵을 건네던 마리아의 손, 차를 내주던 원장 수녀의 손… 이 모든 온기 어린 손의 기도가 정우보다 앞서 이곳에 와 있다.

 

영화는 정우의 날카로운 과거 기억, 고통스러운 꿈, 섬망,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한 현실을 아주 가까이 맞붙여 뒀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하면서도 동시에 선연히 나뉜다. 잃어버린 정우의 기억의 파편이 하나둘 맞춰질 때쯤 그의 고통의 연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또다시 정우는 혼자가 돼 눈보라 속을 걷겠지만, 더는 죽음 같은 절망은 아닐 것이다. 이어짐의 아름다움을 본 뒤이므로. 이것은 살아서 돌아가는 이야기, 귀환의 길이 되었다. 정지혜 JEONG Ji Hye

 

제작 인스터(inster@inster.kr)
배급 인디플러그(tax@indieplug.net)
해외세일즈 엠라인디스트리뷰션(sales@mline-distribution.com)

AWARDS

2015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프록시마 경쟁 부문 후보

2016 러시아야쿠츠크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후보

2017 들꽃영화상 조연상 수상

대안, 독립영화의 중심 영화제

관객과 함께 성장하는 전주국제영화제

JEONJU intl. film festival

2000년,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로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의 지형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 왔다.

전주의 모토는 동시대 영화 예술의 대안적 흐름과 독립 실험영화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미래 영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재능의 발굴, 창의적인 실험과 독립정신을 지지하며,

전 세계 영화작가들이 만나고 연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